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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매드랜드 유목민 삶, 자본주의 상실, 자유의 의미

by 씨네토리 2025. 4. 3.

영화 노매드랜드 포스터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는 현대 미국 사회에서 ‘집 없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 외로움과 자유, 그리고 존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실제 유목민들과 함께한 다큐멘터리적 접근을 통해 현실의 질감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겼으며, 프랜시스 맥도맨드의 절제된 연기는 인물의 고요한 내면을 관객에게 섬세하게 전달합니다. 이 영화는 특정 사건의 드라마보다, 그 드라마가 사라진 이후의 삶을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노매드랜드’는 삶의 거처를 잃은 여성 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일하던 공장이 문을 닫자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캠핑카를 타고 미국 서부를 떠돌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난 인물들이 어떤 삶을 꾸려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면서도, 그들의 삶을 불쌍하거나 비극적으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발견되는 연대, 평온, 그리고 선택이라는 단어를 관객에게 되새기게 만듭니다.

노매드랜드가 담은 유목민 삶의 풍경

펀은 더 이상 고정된 주소를 가지지 않습니다. 그는 넓은 도로와 캠핑장을 전전하며, 계절에 따라 일을 하고, 그날그날 잠자리를 바꾸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처럼 유랑하는 삶은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을 넘어, 정체성과 소속감의 문제로까지 확장됩니다. 그는 더 이상 어느 도시에 속하지 않으며, 전통적인 가정이나 커뮤니티와도 거리를 둡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방랑을 ‘실패’로 보지 않습니다.

유목민 공동체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은 펀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사연을 안고 떠돌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가족을 잃고, 어떤 이들은 의료비나 경제적 이유로 이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행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유롭습니다. 이 삶은 불편하고 고단하지만, 동시에 타인의 기준이나 시스템의 구속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펀은 자연과 조용히 마주하며, 무언가를 다시 채워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영화는 캠핑카 안의 좁은 공간, 거친 도로, 광활한 사막의 풍경을 통해 유목민의 시선을 보여줍니다. 그 시선은 고요하지만 단단하며, 삶에 대한 집착이나 욕망보다는 수용과 관조의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노매드랜드’는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의 삶을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에 깃든 결연함과 자존을 이해하게 만듭니다.

자본주의 상실 이후의 공동체

영화의 시작은 공장이 폐쇄되며 생긴 경제적 붕괴에서 출발합니다. 펀은 일자리를 잃고, 도시의 집값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며, 결국 집 없는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는 단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벌어진 구조적 문제입니다. ‘노매드랜드’는 이러한 시스템의 결함을 드러내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보여줍니다.

펀은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일하고, 계절 노동을 하며, 필요할 때마다 다양한 일자리에 투입됩니다. 이 과정은 유동적이며 불안정하지만, 그는 각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공유하며 작지만 따뜻한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이 공동체는 법적 구조나 계약으로 묶인 것이 아니라, 유사한 삶의 조건을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연대입니다.

이러한 공동체는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감정을 회복하게 합니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이 작은 연대는 오히려 거대한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사람다움’을 전합니다. ‘노매드랜드’는 이 잃어버린 정서를 아주 조용하고 담백하게 보여주며, 관객 스스로가 자기 삶의 관계와 속도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자유의 의미와 떠도는 존재의 아름다움

펀의 삶은 끝없이 이동합니다. 그러나 그는 도망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남는 것보다 떠나는 것이 더 어울리는 삶을 택한 인물입니다. 영화는 그 선택을 존중하며, 정주하지 않는 삶이 가진 고유한 아름다움을 포착합니다. 그것은 물리적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감정적으로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입니다.

물론 이 자유는 대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외로움, 불편함, 그리고 종종 마주하는 슬픔과 불확실성은 그의 삶을 어렵게 만듭니다. 하지만 펀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자신이 만들어가는 삶의 궤적을 묵묵히 따릅니다. 그는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도 있었고, 안정적인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 바람처럼 흘러가는 삶을 택했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선택을 낭만화하지 않습니다. 그저 관조적인 시선으로 따라가며, 한 인간이 자기 삶을 얼마나 진지하게 응시하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줍니다. 결국 ‘노매드랜드’는 단지 떠도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질문, ‘나는 어디에 속하고 싶은가’에 대한 진지한 응답입니다.

‘노매드랜드’는 화려하지 않지만 깊고, 조용하지만 강한 영화입니다. 바람 소리와 해질녘 햇살, 낡은 캠핑카와 오래된 사진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관객에게 작고 오래가는 울림을 남깁니다. 삶의 중심이 흔들릴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펀의 여정은 그 질문에 대한 한 가지 가능성을 보여줍니다.